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세트 테이프 (문단 편집) === 전성기 === 이전의 주 음반 매체였던 [[LP]]는 부피가 크고, 재생 매체마다 음질차가 큰 등 여러 문제가 있었기에 개발되었다.[* 원래 LP 전부터 [[오픈릴 테이프]]의 형식으로 테이프 녹음 자체는 널리 쓰이고 있었지만 기기가 거대하고 사용이 번잡하여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그래도 방송국이나 전문 분야에서는 오픈 릴이 널리 쓰였고, 디지털 녹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LP를 비롯한 모든 음반의 음원이 테이프에 녹음되었다. 즉, 아날로그로서는 가장 음질이 좋은 매체인 것이다.] 개발 후에 필립스의 '표준 매체' 정책이 효과를 거두어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게 됐다. 그 뒤로 테이프 자성체 개선 노력 및 [[소니]]에서 1979년에 낸 '''[[워크맨(음향기기)|워크맨]]''' 덕분에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음반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까지는 카세트보다 좀 더 대형인 8트랙 테이프라는 매체도 있었다. 오토리버스 기능으로 반복 재생할 수 있어 자동차 오디오용으로 널리 쓰였고, [[한국]]에서도 픽업 트럭 등에서 꽤 오랫동안 찾아볼 수 있었다.] 나중에 나온 [[미니 디스크|미니디스크]], [[CD]]보다 훨씬 일반화되었던, 즉 당시로서의 첨단 기술이 필요 없었던 제작 공정[* 잔부품이 많이 들어가지만 테이프 원단만 좋은 것으로 확보하면 나머지는 공장 차리는 데에 그리 고급 기술이 필요하진 않았다.]과 재생 기기가 저렴했던 덕분에 '''1980~1990년대의 대중 음악 시장의 급속 팽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대의 LP는 가격도 비쌌고 부피가 커서 재생에 한계가 있었는데, 카세트 테이프가 등장하면서 수천 원 전후의 가격으로 LP보다 엄청나게 작은 크기에 힘입은 좋은 휴대성까지 갖춘 덕에 음반 시장 발달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2,000원 미만의 콘텐츠가 많이 있었다. 다만 당시 물가를 상각하면 그렇게 싼 것만도 아니다. 당시의 한국에서 프레스한 LP가 3,000~4,000원 정도 했다. 하지만 카세트 테이프는 자동차에서도 재생할 수 있는 등 범용성이 좋았다. 재생 시간이 6~7곡 수준으로 짧아도 잘 팔린 이유였다.] 무엇보다 이동식 데크와 워크맨의 등장으로 길거리에서도 쉽사리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점이 컸다. 운동복 허리에 워크맨을 차고 조깅하는 모습이나, 1980년대 비보이들이 [[boombox|커다란 이동식 데크를 짊어지고 다니는 모습]]은 당시 미국의 풍물이었다. 그보다 조금 전에는 해변이나 공원 같은 데에서 초소형 [[턴테이블#s-3]]로 LP를 재생하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야전('''야'''외 '''전'''축)이라고 불렀다.], 싸구려 부품을 썼기 때문에 '판 긁어먹기' 딱 좋았다. 이후 [[CD]]가 등장해 CD가 더 좋은 음질임에도 불구하고,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의 크기가 작아 휴대하기 편했을 뿐만 아니라 CD보다 가격도 저렴해 여전히 경쟁력이 있어 노래만 좋으면 많이 팔려 나갔다. 1990년대 중반에 활동했던 가수들이 웬만큼 잘 팔리면 100만 장이었던 이유는 바로 카세트 테이프의 싼 가격 때문이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당시에 만 원을 넘긴 CD보다 쌌을 뿐이지, 유명 가수 신곡 카세트 테이프는 4,000~5,000원 수준으로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학생들에게는 아주 싼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노점에서 천 원에 파는 불법 복제 짝퉁 테이프가 쏟아져 나왔다. LP판은 1,000~2,000원 정도 더 비싸도 재킷도 넓고 속지도 커서 소장하기 좋았지만 휴대가 어려워서 다들 카세트 테이프를 골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